문제는 위에서 내려왔고, 해결은 아래에서 올라갔음

한상무가 아침 회의에서 보고서 숫자 하나를 지적한 건 월요일 아침 9시였음. “이 숫자,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요.” 한상무는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음. 정작 그 숫자를 누가 입력했는지는 묻지 않았음.

정부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를 걸었음. “최차장, 이거 확인 좀 해봐요. 상무님이 보고 계세요.” 최차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박과장을 불렀음. “이거 과장님 라인에서 나온 숫자 아니에요?” 박과장은 자기 라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지난주 메일함부터 뒤졌음.

메일함에는 증거가 있었음. 숫자를 처음 입력한 사람은 김대리였음. 다만 그 숫자를 입력하라고 시킨 사람이 박과장이었다는 것도 메일 어딘가에 남아 있었음. 박과장은 그 사실을 모르는 척했음.

오후 두 시, 김대리는 회의실로 불려갔음. 회의실에는 최차장과 박과장이 먼저 앉아 있었음. 테이블 위에는 그 보고서가 세 장 출력되어 있었고, 세 장 다 같은 숫자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음. 김대리는 동그라미가 많을수록 자기 책임도 커진다는 걸 직감했음.

“김대리, 이거 왜 이렇게 입력했어?” 박과장이 먼저 물었음. 김대리는 지난주 박과장이 보낸 메신저 캡처를 보여주려다 그만두었음. 캡처를 보여주면 오늘 하루는 넘기겠지만, 내일부터 박과장과 일하는 모든 날이 피곤해질 거라는 계산이 섰음.

“제가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김대리는 그렇게만 말했음. 최차장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음. “역시 김대리가 빠르네.” 책임을 떠안겠다는 말이 그 자리에서는 칭찬으로 번역되었음.

숫자는 그날 저녁 수정되었음. 수정된 보고서는 박과장을 거쳐 최차장에게, 최차장을 거쳐 정부장에게, 정부장을 거쳐 한상무에게 올라갔음. 올라가는 동안 메일 제목은 세 번 바뀌었음. 처음엔 ‘오류 수정본’이었다가, 다음엔 ‘데이터 업데이트’가 되었다가, 마지막엔 ‘최종 보고’가 되었음.

한상무는 다음 날 아침 회의에서 그 보고서를 들고 흡족해했음. “이번에 우리 팀 대응이 빨랐어요. 정부장이 잘 챙겼네.” 정부장은 겸손하게 웃으며 옆자리를 흘긋 봤음. 최차장도 따라 웃었음. 김대리는 그 자리에 없었음. 그 시간에 김대리는 다음 주 보고서에 들어갈 숫자를 입력하고 있었음.

점심시간, 박과장은 김대리에게 커피를 사줬음. “어제 고생했어, 다음에 소주 한잔 해야지.” 김대리는 고맙다고 했음. 커피값이 책임의 가격이라면 꽤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음.

그날 퇴근길에 김대리는 똑같은 숫자가 다음 달에도, 아마 내후년에도 비슷한 모양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알았음. 문제는 늘 위에서 내려오고, 해결은 늘 아래에서 올라간다는 것.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름들이 한 번씩 바뀌어 붙을 뿐, 구조는 그대로라는 것. 김대리는 그걸 알면서도 내일 또 출근할 거라는 것도 알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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