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팀장이 우리 팀에 온 건 8월 첫째 주 월요일이었음. 외국계 컨설팅 회사 출신이라는 소문이 먼저 도착했고, 서팀장 본인은 그 소문보다 이십 분 늦게 도착했음.
첫 인사는 짧았음. “저는 숫자보다 스토리를 봅니다. 앞으로 우리 팀 리포트에 인사이트를 담아주세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음. 아무도 인사이트가 뭔지 묻지 않았음.
그날 오후, 서팀장은 우리 팀 주간보고를 열어봤음. 2011년부터 써온 엑셀 양식이었음. 탭이 열네 개였고, 그중 아홉 개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음. 서팀장은 그걸 한참 보더니 “레거시네요”라고 말했음.
화요일 아침, 강부장 자리로 메일이 왔음. 제목은 ‘Weekly Report Template Revamp’. 첨부 파일은 파워포인트 한 장이었고, 가운데에 ‘So What?’이라고 크게 적혀 있었음.
강부장은 그 슬라이드를 출력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참 내려다봤음. 그리고 임차장을 불렀음. “임차장, 팀장님이 원하시는 게 뭔지 좀 파악해봐. 자네가 PPT 잘하잖아.”
임차장은 PPT를 잘하지 않았음. 임차장이 잘하는 건 엑셀 피벗이었음. 하지만 이 회사에서 ‘잘하잖아’는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업무 배정의 다른 표현이었음.
임차장은 그날 저녁 문과장한테 메신저를 보냈음. “문과장, 새 양식 초안 좀 잡아줄 수 있어? 방향만.” 방향만이라는 말은 이 회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뜻이었음.
문과장은 그 메시지를 읽고 답장하지 않았음. 대신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해서 내 책상 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올려놓았음. 벤티 사이즈였음. 나는 그 크기만큼 일이 크다는 걸 직감했음.
“김대리,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 거 잘하잖아. 깔끔하게, 심플하게, 근데 임팩트 있게.” 문과장은 손으로 허공에 네모를 그렸음. 그 네모가 이번 주 내 인생이 되었음.
나는 일단 ‘So What?’ 슬라이드를 다시 봤음. 아무 정보가 없었음. 그래서 구글에 ‘컨설팅 주간보고 양식’을 검색했음. 화면 가득 피라미드와 매트릭스와 화살표가 나왔음.
수요일 밤 11시, 첫 번째 버전이 완성됐음. 엑셀 열네 개 탭을 PPT 다섯 장으로 줄였음. 첫 장에는 ‘핵심 메시지 3줄’, 둘째 장에는 2×2 매트릭스, 셋째 장에는 신호등 색깔로 칠한 KPI 표를 넣었음. 파일명은 ‘주간보고_신양식_v1.pptx’였음.
목요일 오전, 서팀장의 피드백이 내려왔음. 정확히는 강부장, 임차장, 문과장을 거쳐서 내려왔음. 원문은 한 줄이었다고 함. “Too busy. Less is more.”
그래서 다섯 장을 세 장으로 줄였음. 매트릭스를 빼고 아이콘을 넣었음. 아이콘은 무료 사이트에서 받았는데, 하나는 아무리 봐도 피자 같았음. 파일명은 v2가 됐음.
금요일 피드백은 이랬음. “Storyline이 안 보여요. Pyramid principle로 다시.”
나는 피라미드 원칙이라는 걸 그날 처음 제대로 읽었음. 결론을 먼저 쓰라는 거였음. 문제는 우리 주간보고에는 결론이 없었다는 거임. 지난주에 한 일과 이번 주에 할 일이 있을 뿐이었음.
그래서 ‘이번 주 결론: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고 맨 위에 적었음. 그 아래에 근거 세 개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배치했음. 근거 중 하나는 ‘전주 대비 특이사항 없음’이었음. v3였음.
둘째 주 월요일, 서팀장이 직접 내 자리에 왔음. 처음이었음. 서팀장은 내 모니터를 보며 “음… 나쁘지 않은데, 좀 더 data-driven하게 갈 수 없을까요?”라고 말했음. 그리고 사라졌음.
data-driven하게 가려면 데이터가 필요했음. 데이터는 예전 엑셀 양식에 있었음. 나는 엑셀에서 숫자를 복사해서 PPT 표에 붙여 넣었음. 이 작업이 매주 두 시간씩 추가됐음.
v4, v5, v6이 지나갔음. 폰트가 맑은 고딕에서 나눔스퀘어로, 다시 Arial로 바뀌었음. 회사 CI 색상이 파란색인데 서팀장은 남색을 원했고, 남색으로 바꾸자 ‘너무 무겁다’고 했음.
그사이 팀원들은 각자 자기 파트를 쓰는 게 아니라, 나한테 엑셀로 보내고 내가 PPT로 옮기는 구조가 되어 있었음. 아무도 그렇게 하자고 말한 적은 없었음. 그냥 그렇게 됐음.
셋째 주 금요일 밤, 파일명은 ‘주간보고_신양식_v9_최종_진짜최종_팀장님피드백반영.pptx’가 되어 있었음. 그날 저녁은 편의점 컵라면과 소시지 하나였음. 소시지 비닐이 끝까지 안 뜯겨서 이빨로 뜯었음.
넷째 주 월요일, 드디어 정상무에게 보고하는 날이었음. 서팀장은 아침부터 넥타이를 두 번 고쳐 맸음. 강부장은 출력본을 세 부 준비했고, 임차장은 레이저 포인터 배터리를 확인했음.
나는 보고에 들어가지 않았음. 대리는 그런 자리에 들어가지 않음. 대신 회의실 문 앞 복도에서 혹시 모를 수정 요청에 대비해 노트북을 들고 서 있었음.
보고는 십이 분 만에 끝났음. 서팀장이 먼저 나왔음. 표정이 묘했음. 그 뒤로 강부장, 임차장이 나왔고, 문과장은 나를 보더니 고개를 살짝 저었음.
정상무의 피드백은 한 문장이었다고 함. “이거 예전에 쓰던 엑셀로 보내줘요. 난 그게 보기 편하던데.”
그날 오후, 서팀장은 팀 전체에 메일을 보냈음. 제목은 ‘Weekly Report – Back to Basics’.
본문은 이랬음. “그간의 실험을 통해 기존 양식의 효율성이 재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팀이 레거시를 단순히 유지한 것이 아니라, 검증을 거쳐 재선택한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강부장은 그 메일을 읽고 “역시 팀장님”이라고 중얼거렸음. 임차장은 아무 말 없이 피벗 테이블을 열었음. 문과장은 벤티 사이즈 아메리카노를 하나 더 사 왔음. 이번엔 자기 거였음.
다음 달 본부 회의에서 서팀장은 ‘보고 프로세스 리이노베이션 사례’를 발표했음. 발표 자료 마지막 장에는 ‘구양식 → 신양식(v1~v9) → 구양식(검증 완료)’이라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음.
그 화살표는 내가 그렸음. 서팀장이 금요일 밤 9시에 “김대리, 이거 하나만 깔끔하게”라고 했기 때문임.
발표는 호평을 받았음. 정상무는 “다른 팀도 이렇게 검증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음. 그리고 다른 팀들도 각자 양식 검증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음.
옆 팀 막내 오대리가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나한테 물었음. “김대리님, 그 v1부터 v9까지 파일 혹시 공유해주실 수 있어요?”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음. 공유 폴더 이름은 ‘참고용_절대수정금지’로 지었음.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소시지 하나를 샀음. 이번엔 가위로 뜯었음.
양식은 바뀌었고, 다시 돌아왔음.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였음. 바뀐 건 내 주말과, 내 폴더 안의 아홉 개 파일뿐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