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딱 한 번, 그 봉투가 온다.
연봉 통보서. 협상이라는 단어는 그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음. 그냥 통보임. 회사가 정한 숫자가 적혀 있고, 서명란이 있고, 제출 기한이 있음. 그게 전부임.
김대리는 올해도 그 봉투를 책상 서랍 속에서 꺼내 펼쳤음. 손끝이 살짝 떨렸음. 매년 이 순간만큼은 가슴 어딘가가 조여드는 기분이었음. 기대라기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감정임.
숫자를 확인했음. 2.1% 인상. 작년과 비슷한 수준임.
그는 잠시 창밖을 바라봤음. 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느끼는 그 묵직한 감각, 계란 한 판이 작년보다 훨씬 비싸졌고, 가스비 고지서는 매달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었음. 뉴스에서는 연간 물가 상승률이 6%에 육박한다고 했음. 그 숫자와 지금 손에 들린 이 숫자 사이의 간극이, 단순한 수치 이상의 무언가로 느껴졌음.
동료 이대리가 옆자리에서 슬쩍 눈을 맞췄음.
“얼마야?”
“2%.”
“나도. 뭐, 어차피 그렇지.”
그녀는 금방 시선을 돌렸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음.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는 분위기임.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임.
면담 신청을 하면 된다고 했음. 본인의 성과를 증명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 증명이라는 게 만만치 않음. KPI 수치, 팀 기여도, 프로젝트 성과… 그 모든 걸 숫자로 정리해서 인사팀 앞에 앉는 일.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받는 시선. 마치 당연한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처럼 보이는 그 느낌임.
김대리는 결국 봉투를 다시 접었음. 서명란에 도장을 찍었음. 제출함에 넣었음.
퇴근길,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집어 들다가 가격표를 봤음. 작년엔 분명 더 쌌는데, 라는 생각이 스쳤음. 그래도 샀음. 배가 고팠으니까.
집에 돌아와 가계부를 열었음. 월세, 관리비, 보험료, 통신비, 식비. 매달 조금씩 오르는 항목들임. 그에 반해 입금되는 숫자는 고작 몇만 원 늘었을 뿐임. 수학적으로는 분명히 마이너스임. 체감으로는 더욱 그러함.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음.
이게 감사해야 할 일인가.
잘리지 않았으니까. 월급이 나오니까. 아직 버티고 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그 기준이 ‘성장’이 아니라 ‘생존’으로 바뀌어 있었음.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신이 조금은 서늘하게 느껴졌음.
창문 너머로 밤바람이 불었음. 김대리는 가계부를 닫았음.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까. 그게 소시민의 일상임. 그리고 오늘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