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냈음.
진짜로 끝냈음. 몇 주 걸렸는지 기억도 잘 안 남. 중간에 요건이 두 번 바뀌었고, 담당자도 한 번 바뀌었고, 나는 그 모든 걸 꿋꿋이 받아 안으면서 여기까지 온 거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일은 일이니까. 그게 내 방식이었음.
파일을 정리하고, 인수인계 문서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검토한 다음에 메일을 보냈음. 수신자는 옆 팀 김 과장임. 참조엔 팀장들도 잔뜩 들어가 있음. 이제 공은 저쪽으로 넘어간 거임.
발송하고 나서 의자에 등을 기댔음. 오랜만에 숨 좀 쉬어도 되겠다 싶었음.
3분 뒤에 메시지가 왔음.
“혹시 이거 언제쯤 처리 가능할까요?”
눈을 비볐음. 방금 보낸 거임. 아직 읽지도 않았을 시간임. 그냥 자동반사처럼 보낸 건지, 아니면 알람 맞춰놓은 건지 모르겠음.
한 시간 뒤 또 왔음.
“진행 상황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위에서 계속 물어봐서요.”
위에서 물어봐서. 참 좋은 말임. 자기가 재촉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시킨 거라는 포장임. 그 문장 하나로 자기 손은 깨끗해지는 거임.
또 한 시간 뒤.
“혹시 이슈가 있는 건지요? 공유해주시면 함께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그 단어가 가장 아이러니했음. 지금 이 사람이 원하는 건 같이 해결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슈 있음’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하는 순간을 기록해두는 거임. 그 기록이 나중에 쓰일 거임. 일이 안 풀렸을 때 “저는 제때 넘겼고, 제때 확인했습니다”라는 증거로.
사정을 설명하려고 해봤음.
배경이 있다고, 요건이 중간에 두 번 바뀐 거라고, 그래서 현재 이 부분은 재확인이 필요하다고. 메시지를 꽤 길게 썼음.
돌아온 답장은 짧았음.
“아, 저는 그쪽 사정은 잘 모르겠고요. 일단 언제 될지만 알 수 있을까요?”
모르겠고.
그 단어가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졌음. 모르겠다는 게 아님. 알고 싶지 않다는 거임. 내 설명이 자기 기록에 남으면, 나중에 책임 소재가 흐려질 수 있으니까. 깔끔하게 내 쪽 문제로 남겨두는 게 훨씬 편한 거임.
예전에 이 사람 프로젝트 자료 정리 도와준 적 있음. 야근하면서. 그때 이 사람 표정이 기억남. 진짜로 고마워했음. 커피 한 잔 사주면서 “덕분에 살았어요”라고 했음. 그 말이 싫지 않았음.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이런 거지 싶었음.
지금 그 사람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음.
지금 화면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은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쥔 채로 어떻게 빨리, 얼마나 깔끔하게, 어디에 흔적을 남기면서 던질지만 계산하고 있는 사람임. 손 안 데는 게 목표임. 문제가 해결되는 게 목표가 아님.
회사에서 제일 무서운 건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음.
경쟁사가 아님. 시장이 아님. 같은 사무실 안에서, 같은 커피머신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때임. 미소 뒤에 계산이 있고, 협력이라는 단어 뒤에 알리바이가 있을 때.
그게 제일 피곤한 전쟁임.
오늘도 야근임. 창밖은 벌써 어두워졌음. 나만 아직 이 자리에 있음.